[휠체어 타고 방방곡곡]가장 한국적인 궁(宮), 창덕궁_봄꽃 흐드러진 부용지에서 덕혜옹주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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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가장 한국적인 궁(宮), 창덕궁_봄꽃 흐드러진 부용지에서 덕혜옹주를 생각하다
  • 편집부
  • 승인 2024.04.19 14:00
  • 수정 2024-04-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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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온화한 바람이 더해지면 꽃은 여러 색깔로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봄의 색깔이 모두 같지 않듯 모두의 꿈도 봄의 색깔처럼 각각의 꽃으로 피어난다. 봄꽃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건 자연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이맘때면 자석에 이끌리듯 발길이 자꾸 창덕궁으로 향한다. 창덕궁을 찾은 관람객은 봄꽃보다 화려한 한복을 입고 누가 더 예쁜지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창덕궁은 다양한 봄 행사로 분주하다. 야간 개장과 달빛기행으로 조선시대로 점프한다.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궁이다. 역사를 품은 창덕궁에도 물오른 봄이 한창이다._전윤선/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 한껏 물오른 봄꽃이 궁궐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창덕궁 ⓒ클립아트코리아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일원은 접근성 개선으로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돈화문(敦化門)’의 ‘돈화(敦化)’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을 화목하게 하고 교화시킨다’는 뜻이다. 『중용』에서 나온 말이다. 조선 궁궐 정문의 이름에는 한자로 될 ‘화(化)’ 자가 들어간다. 이는 임금이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경복궁의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의 돈화문,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의 흥화문(興化門), 덕수궁의 인화문(仁化門)이 그렇다. 현재 덕수궁은 120년 전 남문인 인화문이 헐리면서 동문인 대한문이 정문이 됐다.

창덕궁 돈화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휠체어와 유아차 이용 관람객을 위한 경사로 관람 동선 안내 표지가 있다. 안내판에는 주요 관람 동선과 이동 가능 동선으로 구분해 경사 어려움, 바닥이 고르지 못함, 오르막길, 내리막길 등을 픽토그램으로 표시했다.

▲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전각 사이 문에 경사로 설치된 궁

왕의 집무실과 왕비의 침전 둘러보다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인정전에는 두 개의 낮은 월대가 있다. 옛 건축물이 그렇듯 월대는 계단이어서 휠체어 탄 관람객은 정전 안까지 접근할 수 없어 조정 마당 품계석에서 인증 숏을 찍고 오른쪽 문을 통해 선정전으로 향했다. 궁궐 전각을 이동하는 문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원래부터 있던 것같이 자연스럽다.

선정전(宣政殿)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이다. 다른 말로 편전(便殿)이라고도 부른다. 왕이 업무도 보고 신하들과 회의를 하며 토론도 하는 공간이다.

창덕궁의 전각들은 봄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궐 내 모든 건물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빛과 바람을 들이고 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다양한 액자가 만들어지고 빛과 시간에 따라 각양각색의 풍경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햇빛과 바람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시시각각 명화로 탄생한다.

대조전으로 발길을 옮겨갔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 공간이다. 대조전의 압권은 앵두꽃이다. 햇빛이 무르익은 사월이면 여린 앵두꽃이 핀다. 앵두꽃은 왕비의 옷고름 같이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꽃잎을 떨군다. 볕 잘 드는 대조전 담벼락 화단에 핀 앵두꽃. 봄이 지나갈 무렵 앵두는 빨갛게 익어간다.

희정당으로 간다.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침전 건물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그 기능이 바뀌었다. 희정당은 입구에서부터 계단 때문에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바로 옆 낙선재로 향했다.

▲ 단청을 하지 않은 낙선재는 단아한 멋이 살아 있는 전각이다.

 

단청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낙선재

덕혜옹주의 삶과 능수벚꽃이 눈길

 

낙선재는 일반적인 궁궐과 달리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곳이다. 봄이면 낙선재 화계 일원에 피는 산수유와 홍매화, 능수벚꽃이 으뜸이다.

낙선재는 고종의 고명딸이자 막내딸인 덕혜옹주가 1962년 귀국해 머물던 곳이다. 그는 봄꽃이 한창인 1989년 4월까지 이곳에 머물다 76세로 삶을 마감했다. 덕혜옹주 삶은 조선의 흥망성쇠를 함축하고 있다. 나라는 망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가해국인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 했고, 일본인과 정략결혼까지 해야 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견디기엔 덕혜옹주에게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디기 어려운 삶은 그녀에게 조현병을 안겨 주었다. 여기에 이혼과 딸의 실종까지 더해지면서 정신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37년 만에 국적을 회복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덕혜옹주는 주변 사람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지만, 창덕궁으로 돌아오자 옛 기억이 살아났는지 궁 안을 돌아볼 때 연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낙선재 뒤뜰에 핀 매화는 대한제국의 화양연화를 꿈꾸는 듯 화려하게 핀다. 덕혜옹주의 인생은 피지도 못한 채 꺾여 버린 대한제국의 꿈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식민지 국민의 삶은 더 참혹하고 고단했지만.

▲창덕궁 자시문 성정매

 

한 무리의 일본인 관람객들이 해설사를 따라 낙선재로 진입한다. 해설사는 조용하면서 단호한 말투로 덕혜옹주 일대기를 일본어로 해설한다. 일본인 관람객은 낙선재에 머물던 덕혜옹주의 슬픈 삶과 역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자칭 국제사회 질서를 이끌어 간다는 G7 국가는 힘없는 나라를 폭력으로 짓밟아 식민지로 만들고 자원을 수탈해 부강해진 가해 국가다. 식민지 피해 국가는 이래저래 해방됐지만 그로 인해 국민은 분열되고 가난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한국처럼 내전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가해 국가가 여전히 국제사회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지만 피해 국가는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낙선재는 평지여서 휠체어 탄 여행객이 관람하기 딱이다. 낙선재 정원에는 온갖 봄꽃들이 누가 더 예쁜지 자랑질을 한다. 그러나 그중 으뜸은 역시 능수벚꽃이다.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능수벚꽃은 탄성을 자아낸다. 능수벚꽃이 필 때면 관람객들로 둘러싸여 좀처럼 가까이 갈 틈이 보이질 않는다. 능수벚꽃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휠체어 이용인의 눈높이에서 본 낙선재의 능수벚꽃.

 

부용지, 창덕궁 후원의 백미를 만지다

달빛 은은한 창덕궁의 봄밤을 걷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왕의 정원인 후원으로 연결된다. 후원은 인터넷 예약 후 매시간 일정한 인원이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입장할 수 있다. 해설사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면 부용지다.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이다.

정조는 후원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정조 24년(1800년) 3월 22일 십만여 명이 후원에서 과거시험을 봤고 3만2800여 명이 답안지를 냈지만 합격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적은 숫자였다고 한다. 후원에서 치러지는 과거시험은 인원 제한이 없어 응시생이 많았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의 백미 부용지의 봄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클립아트코리아

부용지의 핵심은 주합루이다. 정조 원년(1776년)에 창건된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왕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으로 사용됐고,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했다. 규장각은 정조대왕의 개혁정치를 위해 정책 개발과 도서 수집 및 연구기관으로 설립됐다. 부용지 앞에는 모형으로 만들어진 부용지가 있어 손끝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도 부용지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장애인화장실도 있어 근심을 덜어준다.

참고로 4월 11일부터 시작되어 6월 2일까지 창덕궁 달빛기행이 운영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매주 목, 금, 토, 일요일 저녁에 펼쳐진다. 전문해설사와 함께 달빛 은은한 창덕궁을 둘러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 예술 공연도 즐길 수 있다.

사실 아름다운 계절은 따로 없다. 계절마다 특색 있게 제 몫을 할 뿐이다. 봄의 창덕궁도 마찬가지다. 다만 봄의 색깔로 관람객을 맞는 창덕궁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뿐이다. 지금 창덕궁은 역사와 자연이 주는 날것의 감각을 깨울 뿐이다.

▲부용지 앞의 점자 안내판과 모형. 시각장애인도 촉각을 통해 궁을 즐길 수 있다.

 


무장애 여행정보

 

◆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을 이용하면 된다.

 

◆ 접근 가능한 식당

-안국역 근처에 여럿 있다.

-모아스토리 추천 배리어프리 맛집 <시크릿가든>: 함박스테이크가 시그니처인 샐러드, 버거, 샌드위치 전문점이다. 야외 테이블에는 단차가 있지만 식당 전체적으로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에 불편이 없다.(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68-1/02-741-9289)

 

◆ 접근 가능한 화장실

-창덕궁 매표소

-낙선재 일원

-후원 부용지 일원

 

*추천 맛집은 필자가 아닌 편집자의 추천이다. 무장애 관광 벤처기업인 모아스토리에서 직접 답사해 추천한 맛집 리스트에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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